기대의 무덤, 그 위에 피어난 케이블 정글
기대의 무덤, 그 위에 피어난 케이블 정글
이건, 실패의 기록.
코드를 짜는 내 손끝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상상, 그 황홀한 꿈을 꾸었다. 맥북의 작은 화면은 더 이상 내 야망을 담기에 비좁았거든. 그래서 거금을 들였다. 마치 미래로 향하는 티켓이라도 되는 것처럼, 50만 원이라는 돈을 기꺼이 지불했지. '회전 가능한 15.6인치 스크린 익스텐더', 이름 한번 거창하더라. 내 책상을 우주선 조종석처럼 만들어 줄 구원자, 그것이 내 환상 속 모니터의 첫인상이었다.
택배 상자가 도착했을 때, 심장은 희미한 불안과 거대한 기대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하지만 상자를 여는 순간, 기대는 발목을 접질렸고 불안이 성큼 다가왔다. 차갑고 텅 빈 플라스틱의 감촉, 가볍다 못해 위태로워 보이는 회전 브래킷. 마치 장난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중요한 건 성능이잖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조심스럽게 맥북에 거치했다.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
전원을 연결하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케이블의 정글이었다. 내 미니멀한 맥북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검은 선들. 단 하나의 Type-C 포트로 우아하게 세상을 연결하던 나의 작업 공간은 순식간에 혼돈의 구렁텅이로 변했다. 그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나비의 등에 달라붙은 흉측한 거머리 떼 같았다.
"정말 왜 샀나 싶을 정도의 쓰레기.. 노트북으로 코딩 작업을 위해 거금을 들여 구매했것만....회전형이라는거 빼고는 장점이 하나도 없다.. 이딴 쓰레기를 이 돈 주고 사다니.. 집사람이 알면 등짝을 때릴듯하다.."
맥북과의 호환성은 최악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했다. M1, M2, M3 표준 칩은 지원조차 안 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보았다. 내 맥북은 지원 목록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지만, 그 아슬아슬함은 곧 절망이 되었다. 화면은 시시때때로 깜박이며 자신의 존재를 비웃었고, 색감은 물 빠진 낡은 사진처럼 생기를 잃었다. FHD, IPS 패널? 그럴싸한 스펙들은 이 케이블 지옥과 호환성 문제 앞에서 한낱 글자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팔리지도 않는 멍에
분노는 차가운 후회로 변했다. 이 끔찍한 플라스틱 덩어리는 이제 내 책상 위 가장 거대한 실패의 증거물이 되었다. 50만 원이라는 숫자는 잉크가 번지듯 흐릿해졌고, 그 자리엔 '어리석음'이라는 선명한 낙인이 찍혔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의 눈빛은 시베리아의 겨울바람보다 차가울 것이다. 등짝을 후려치는 손길은 차라리 따뜻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 첫 번째 절망: 맥북과의 끔찍한 호환성
- 두 번째 절망: 책상을 뒤덮은 케이블 정글
- 세 번째 절망: 반값에도 외면당하는 중고가치
결국 나는 항복을 선언했다. 당근마켓에 25만 원이라는, 내 속살을 도려내는 듯한 가격으로 매물을 올렸다. 하지만 세상은 내 실수에 관대하지 않았다. 아무도, 단 한 명도 이 실패의 기념비에 관심을 주지 않더라. 나의 50만 원은 이제 팔리지도 않는 25만 원짜리 골칫덩어리가 되어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
그저 화면 두 개가 더 갖고 싶었을 뿐인데.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코드를 유영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 모니터가 내게 확장해 준 것은 작업 공간이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짜증뿐이다.
회전형이라는 거? 그래, 그건 유일한 장점일지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크린을 보고 있자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을 맴도는 내 속마음 같아서 헛웃음만 나온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저녁이나 실컷 사 먹을 것을. 그랬다면 적어도 뱃속이라도 따뜻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