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모니터, 그놈의 전쟁과 내 손가락

뉴스를 틀면 온통 전쟁 이야기다. 어디선가 미사일이 날아가고, 누군가는 집을 잃고, 세상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떠들어댄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지. 인류의 평화니 인도주의적 지원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건 내 주식 계좌다.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포탄 한 발에 내 한 달 치 월급이 증발하고,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송유관이 잠겼다는 소식에 내 노후 자금이 가루가 된다.
과연 그놈의 전쟁이 문제일까, 아니면 이 저주받은 내 손가락이 문제일까. 남들 다 팔 때 '공포에 사라'는 유튜브 렉카 새끼들 말을 믿고 풀매수를 때린 내 능지 처참한 손가락 말이다. 세상 참 유기적이지 않나? 남의 나라 비극이 내 통장의 희극도 아니고 순도 100%의 비극으로 치환되는 이 기적 같은 경제 시스템 말이다. "과연 그놈의 전쟁이 문제인지 내 손가락이 문제인지..내 주식계좌만 박살나는구나.. 하" 이 짧은 한숨에 담긴 무게를 저 모니터 속 전문가들이 알기나 할까.
멈추지 않는 빨간불의 향연

전쟁에 목매고 유가에 목매고 금리에 목매던 전문가라는 놈들은
개미들 목을 매기 위한 연습 중이었나 보다
내일도 시장은 열린다며 투덜거린다
나도 내일은 한강물에 몸을 매야할까
오늘따라 유난히 본 적도 없는 우크라이나 땅바닥이 갑갑하다
길을 걷다 마주친 신호등이 유난히 빨갛다. 주식 창에서 보던 그 불쾌한 빨간색이 아니다. 이건 '멈추라'는 신호다. 그런데 내 계좌의 하락은 왜 멈추질 않는 거냐? 아니, 사실 내 계좌는 파란색으로 멍이 들어 터져나가고 있는데, 세상은 온통 인플레이션이니 뭐니 하며 빨간색 공포를 주입한다. 펜트하우스에서 와인 빨며 "시장의 변동성은 곧 기회입니다"라고 지껄이는 놈들이 불쌍해? 스포츠카 끌고 다니면서 하락장에도 숏 쳐서 돈 버는 놈들이 우울증 온다는 게 말이 되냐고. 당장 내일 먹을 쌀 한 톨 걱정되는 내 인생이 더 슬퍼 이 씹새끼들아.
내 인생이야말로 멀리서 봐도 비극, 가까이서 봐도 비극 그 자체인데, 내가 왜 얼굴도 모르는 저 나라 사람들의 평화를 빌어줘야 하나. 내 통장의 평화는 이미 작살이 났는데. 고등어 비린내 나는 백반 한 그릇 먹으면서도 앱을 껐다 켰다 하며 입천장 데이는 줄도 모르는 내 꼬락서니가 더 처참하다.
절망의 독무, 그 끝의 여운

결국 남는 건 광기뿐이다. 박살 난 계좌를 붙잡고 모니터 앞에서 발버둥 치는 꼴이 꼭 기괴한 춤사위 같다. 누군가에게는 이 처절한 몸부림도 구경거리가 되겠지. "저 새끼 평단가 좀 봐라" 하며 낄낄거리는 관객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파란색 피를 흘리며 독무를 춘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내일 장 열릴 생각에 몸서리치는 내가, 죽어서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딴따라 새끼들을 걱정하고 전쟁터의 평화를 기도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고 이 개새끼들아.
어느 날 강남 카페에서 봤던 그 잘생긴 청년처럼 무심하게 "저 아세요?"라고 묻고 싶다. 내 주식 계좌에게, 그리고 이 잔인한 세계 시장에게. 하지만 돌아오는 건 "뭐래 짜증 나니까 손절이나 해"라는 차가운 현실의 목소리뿐이다. 호다닥 매도 버튼을 누르러 가는 내 뒤로 시장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냥, 관심만 가지세요."
누군가 주식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그 남자의 대사를 빌려 말해주고 싶다. 돈 넣지 말고, 영혼 팔지 말고, 그냥 멀리서 관심만 가져라. 내 손가락이 내 목을 조르기 전에. 세상은 전쟁으로 망해가고, 나는 내 손가락으로 망해간다. 무엇이 더 거대한 비극인지 따지는 것조차 사치인 밤이다.